• 수신자: 담피르 -2-
  • 2023. 9. 29. 16:46
  •  

     

     ― 담피르.

     

     

     지루한 글이라 한다면 사건 보고서 같은 류의 글이려나요. 아니, 이건 경찰에게로 가야 할 글인가. (…)

     ……실례했습니다. 그나저나, 졸업한 이후에도 아카데미에서 배웠던 것과 관련된 지식을 공부한다는 게 제겐 마냥 대단한 이야기로 들립니다만. 괜찮으시다면 어느 분야를 전공하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탐정인 당신께선 첫 편지에서 이미 알아채셨겠으나 저는 마법생명공학을 전공하고 해당 분야를 졸업했습니다. 함께 연구원 일을 하면서도 같은 공부를 반복하는 걸 쉽게 생각하는 이들은 적거든요.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나름대로 우정을 쌓는 사람들을 향해 부지런하단 생각을 했던 것도 같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끼리 만났다 해도 딱히 친분을 쌓지는 못했을 것 같거든요. 다만 시간이 지난 후 이렇게 동문회로 마주하게 됐으니 지금으로선 그것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 같은 사람도 친구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담피르, 당신의 말에 제가 알려드릴 수 있는 것이 하나뿐이라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아카데미라는 교집합이 있어도 인간관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더군요. 연구원 이전 관리인으로 일할 땐 아카데미 출신에, 소수종족 보호지구라는 같은 고향 출신까지 붙었는데도 그 시절 인간관계는 여전했습니다. 같은 종족을 만났다면 좀 달랐을까요?

     

     흡혈귀란 사실에 놀란 사실도 잊었으니 사과는 부디 거둬주세요. 평범한 식사 또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제 쪽에선 사과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말 실례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담피르 당신께선 각종 매체에서 나오는 흡혈귀를 볼 때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대부분 흑발에 해를 보지 못하고 십자가를 두려워 하니까요. 당신께서도 비슷한가요? (…) 실없는 말이리라 생각합니다. 무시해주셔도 좋습니다. (정말로요.)

     마찬가지로 호기심이란 연구원의 고질병이기도 하니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 이유 또한 없습니다. 그저 평범한 해파리예요. 학계에선 저 같은 생물을 홍해파리라고 부르더군요.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제 고향일 바다가 그렇게까지 그립진 않습니다. 이상한 일이죠. 당신은 고향이 그립나요? 동료들에게 물었다가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고 오는 길이라 부득이하게 여쭤봅니다. (…)

     

     치정 싸움이라. 혹시 관련 사건을 담당해보신 적이 있으신 건지. 보통이라면 나오지 않는 주제 아닙니까? 감히 추측이긴 합니다만.

     더해서. 부디 찾아뵐 일이 없길 바라고 있으나 혹시 모르니 다음 답장엔 명함을 한 장 같이 부쳐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추신. 게테온. 참고하겠습니다. 마니아까진 아니라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걸 따라 마시는 정도에 그쳤거든요. 음, 이번에도 따라 마시는 게 되겠으나 직접적인 추천은 처음이니. 스스로 신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에 적당히 입맛에 맞을 거라 생각합니다. 달콤하다는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요. 단 커피를 좋아하십니까?

     추신의 추신. 분명 실례인 말이겠지만 그 한 줄로 흡혈귀 이미지에 힘이 실렸습니다. (…)

     

     

    ― 해파리 메피스토 드림.

     음주엔 취미가 없어 아쉽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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