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가신 그 꼿꼿했던 양반보다 내가 더 끈질기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이젠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더는 사람을 잃지 않았으면 해. 그 어처구니 없는 이유가 부디 내가 되지 않길 바라고.

 이 거대한 별 앞에서 사람은 한없이 작아지고 이 자리에 있는 우리처럼 무력해지기도 하지. 살아남고 싶은 것에 이유는 없어. 우리는 떳떳하게 생존해왔다. 우리밖에 없는 별에서조차 희망을 잃지 않고. 우리를 젖게 한 사명감은 비록 말라 흩어졌으나 걸음을 멈추지 않았으니 충분해.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그동안 했던 말에 후회하지 않아. 죽음의 당사자로서 그 말을 하게 된 지금조차. 그 하등 쓸모없는 말에도 함께 생존해온 모든 대원들에게 감사한다. 우리가, 다시는 마주치지 않길 바라며. 〈 Fides 〉 소속, …. 이상.

 …….

 병을 깬다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요? 두 사람, 부하의 위치에서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으나 다만 특정하진 않겠습니다. 〈 Fides 〉 소속 대위와 중위라고 하면 두 사람밖에 없으니. 그간 참 고생했습니다. 할 말이 이거밖에 없군요. 하하. 후환이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추신. 나는 저마다의 밤을 맞을 준비를 하러 갑니다. 이 병을 찾았다면 부디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이름 모를 자의 밤 친구가 될 수 있도록.

 

 


 

Though it's the end of the world, don't blame yourself. And if it's true, …….

 이것이 세계의 종말일지라도 자책하지 말아요.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

 

 

 떠난 사람을 보내는 데 있어선 과거의 개념을 빌릴 필요가 없다. 이제는 아득해진, 그 아무리 순탄한 인생이래도 죽음은 배려하는 법을 몰랐으니. 장례 절차에 대해선, 죽는 이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고들 하나 다르게 생각하는 이 하나가 있다. 후방의 위치에서 무력하게 타인의 죽음만을 살갗으로 겪는 여자가 바로 그러했다. 이승 사람이 죽은 사람의 온도에 익숙해지기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흔히들 치르는 장례는, 죽은 이에 대한 마지막 예의의 의미도 지니지만, 무엇보다 큰 건 남은 주변인들의 마음 정리를 위한 거라고. 종종 중얼거렸고 때로는 수긍했다. 다만 어느 날부턴 그 중얼거림도 멎는다. 죽음이라면 몰라도 이미 떠났다는 사실만큼엔 익숙해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때때로 같은 장소를 오가야 했다.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마지막 곡소리를 한데 욱여넣었던 장소에. 다만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개념이 변질되기 시작한다. 불길에 끝내 날지 못한 잔해들을 모아 한 곳에 묻는다 해도 우리들이 이곳에 다시 찾아올 일은 없었으니. 너무 많은 곳에 흩어져 있었다. 종말이 어느 한 부분을 비껴가지 않듯이. 죽음이 순탄한 인생을 배려하지 않듯이. 그럼에도 자신도 모르는 새 차곡차곡 정리되어가는 게 마음이란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단지 작은 투정 그뿐. 책임은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더니 끝내 여자에게로 향한다. 모든 대원들이. 예전이라면, ……. 모르는 게 약이라더니 딱 그 꼴이었다. 바다로 많은 것이 흘러간다. 가라앉으면 좋을 텐데. 그것들은 가라앉는 법도 몰랐다. 모든 죽음을 확신하는 과정은, 언제나 쉽지가 않다. 언니. 언니는 무엇을 위해 나를….

 

 ……아, 종말. 무력하게 세상의 죽음을 실감한다.

 

 

That's our own.

그게 우리가 가진 전부이니까.

― Goodbye To A World, Porter Rob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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