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치프레이즈

커튼콜 저편의 아이



 

“ 688.04… 찾았다. ”



 

::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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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까지 오는 옅은 금발은 햇살 아래에선 노란끼 없이 하얗게 반짝이기만 했다. 기찻길 모양으로 반 땋은 머리카락은 혼자 땋아내린 거라곤 믿을 수 없이 깔끔하고, 또 촘촘하다. 초록색 눈은 빛을 받으면 여름 나뭇잎이 되고, 깜깜한 곳에선 멀리서 보는 숲처럼 어둡다. 머리카락과 눈을 보고 있자면 생각나는 것은 올리브였다. 소녀는 올리브기름과 열매의 색을 나눠가진다.

우등생 이미지에 걸맞게 교복 또한 단정히 챙겨 입고 다닌다. 가끔 가디건 같은 걸 걸치거나, 맨투맨을 입기도 하는데 여름이라 그런지 보기 힘든 모습이 되어버렸지만. 여름임에도 어째선지 맨살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드러나는 건 얼굴과 손, 하얀 니삭스와 치마가 가리는 부분을 제외한 약간의 다리뿐이었다. 안 더워? 전혀. 오히려 에어컨 때문에 추울 지경인걸.

검은색 구두를 신고 검은색 안경을 썼다. 가끔 안경을 벗고도 잘만 돌아다니는 모습에 누군가 패션 안경이냐고 묻자, 소녀는 물어본 사람에게 안경을 넘겨줬고… 살면서 처음 겪는 어지러움에 그만, 그 누군가는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버렸다는 이야기. 평범한 사람이 어지러울 정도라면 그 안경의 주인은 흐릿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음이 분명한데, 어째선지 소녀는 사람이 없는 곳에선 종종 안경을 벗고 있곤 했다. 세상이 너무 선명해 어지럽다는 게 그 이유였다.

 

 

 

:: 이름

서영



 

:: 국적

한국



 

:: 성별

여성




:: 학년/나이

2학년/18

 



:: 키/몸무게

156cm 45kg




:: 성격

기분파, 융통성 있는, 이타주의

귀가 얇은 독립적인 부주의 솔직한

소녀는 이 학교 제일가는 기분파, 그런 주제에 귀 또한 얇기도 얇아 이리저리 잘 펄럭대곤 했다. 그리 펄럭대다가 이상한 곳에 도착하는 일도 부지기수. 그러나 모르는 곳에 도착하는 거라면 차라리 양반이다.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학생 출입 통제 구역에 잘못 들어갔다가 반나절 동안 못 나온 적도 있으니, 주변인들은 그렇게 입을 모았다. 이것저것 잘 헤매는 주제에 성향 또한 독립적이며 외톨이를 자처하는 터라 알게 모르게 '물가에 내놓은 아이' 취급을 당하곤 한다. 본인은 알까? 모른다는 쪽에 한 표를 건다.

'생긴 건 똑 부러지게 생겼는데…….' 누군가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그렇게 말한다. 멋대로 기대를 걸더니 전철처럼 금세 떠나가는 사람은 다 저렇게 말하더라. 소녀는 원칙주의가 싫었고, 얽매이는 것보다는 자유 쪽이 좋았다. 태생부터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무대미술과를 고른 이유도 자유라면 자유일까. 무대야말로 작은 융통성의 실현이니까. 무대에선 모든 등장인물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배우들은 모든 역할을 알맞게 연기해 가니까. 그런 '작은 세계'를, 소녀는 여태껏 동경해온 건지도 모른다.

그러한 자유와 융통성을 사랑하는 소녀는 제 사랑을 남에게 전파하기 위해선지 언제부턴가 솔직해지기 시작했다. 솔직함은 융통성을 위한 수단이었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신기루. 그러한 감정은, 말이 좋아 사랑이라지만, 그럼에도 소녀는 사랑을 놓지 못하고…… 그를 위한 희생에 쓸쓸함이 따를지언정 아픈 적 없었으니, 사람들은 이것을 이타주의라고 부른다. 한자 가득한 옛 책에 쓰인 애타설이라는 단어를 쓸어본 기억은 제법 오랫동안 소녀의 곁에 남아 마음을 녹진녹진하게 만들곤 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 기타 특징

 

1.

연극원, 무대미술과 소속. 연출과와 무대미술과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는 듯싶다. 연출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건지 어느 만우절, 연출과 학생에게 반을 바꾸는 건 어떻냐며 조심스레 건의를 해봤다는 소문도…… 물론, 진짜인지는 당사자들만이 알겠지만.

 

2.

동아리는 음향엔지니어반으로, 선택에 크게 고민은 없었다고. 커다란 스피커와 각종 음향 장비들을 구경하고 싶었다나. 자신이 책에서 봤던 장비―해당 책은 1900년대 문화에 대해 소개하는 책이었다―와는 조금 달라 실망한 적도 있으나 그것 또한 예전의 이야기. 지금은 딱히, 아무런 감상도 없다. 참, 그래. 우연히 보러 간 공연 음향장비에 문제가 생기면 남모르게 슬쩍 해결해 볼까, 하는 로망 정도야 가지고 있을까. ……소녀는 전문가들의 존재를 종종 까먹곤 한다. 있는 게 당연한 사람들이라 그런 걸까.

 

3.

생일은 10월 14일. 늘 혼자 보내곤 한다. 소녀는 혼자만의 여행길을 사랑하니까.

 

4.

줄 이어폰, 편지, 공중전화, 비디오테이프, 낡은 창문에 끼워진 쪽지…… 소녀는 예전의 것들을 좋아했다. 그 시대를 살아본 적도 없는 주제에 멋대로 추억하곤 했다. 현대인들이 낭만을 팔아 편리함을 취할 때 홀로 편리함을 팔아 가져본 적 없는 낭만을 좇는다.

 

5.

하늘도 땅도 달궈져 서있는 것조차 벅찬, 더운 날씨를 유독 힘들어 한다.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 소녀의 눈앞도 덩달아 울렁거리기 시작했으므로. 어쩐지 늘 어지럽다고 말하는데 건강에 특별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니 걱정은 말도록 하자. 그저 말버릇이었다.

 

6.

취미로는 옛 유행가 찾아 듣기, LP판 수집 정도를 꼽는다. 다만 소녀에게까지 전해지는 옛 유행가 중에는 좋은 음질의 것들이 별로 없어서, 주변 어른들이 불러주는 걸로 만족하고 있다는 듯. 그래서인지 소녀는 가끔 바라곤 한다. 옛 다방 같은 게 있다면 좋았을 텐데.

가끔 햇살이 드는 커다란 유리 앞에 앉은 소녀가 작은 스케치북에 무언가 스케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연출하고 싶은 무대부터 조명, 심지어는 의상까지 스케치북엔 다양한 그림들이 있으나 어쩐지 잘 말하려고 하진 않는다. 이유랄 게 있을까. 소녀는 부끄럽다고 말을 줄인다.

 

7.

의자에 등 기대고 앉아 낮잠 자는 것도 습관이라면 습관일까. 점심시간엔 창가 자리―결코 본인의 것이었던 적 없던―에 기대앉아 종종 잠에 들곤 하는데, 그 자세로 불편하지도 않은지 아무리 반이 시끄러워도 일어나는 일은 손에 꼽았다. 누군가 독하다 말해도 소녀라면 그저 웃으며, 이런 잠일수록 더 단 법이라 말하리라.

 

8.

가족을 소개해 보라 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건 엄마도, 아빠도 아닌 '언니'였다. 10살 차이 큰 언니. 어렸을 때부터 지금도, 언니가 내내 돌봐줬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지 소녀의 부주의한 행동과 철없는 말은 종종 저마다의 '동생'을 생각나게 한다. 

 

9.

'생각보다 얼빠지고 골 때린 애'라는 평가 주를 이룬다. 뭐가 됐든, 첫인상과 현 인상이 180도 다르다는 건 확실했다. 본인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고 배척하지도 않으니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길은 없지만. 소녀는 좋고 싫음의 경계가 모호한 아이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말이었다.

 

10.

다가가면 꼭 장마가 온 것만 같아. 습한 숲의 향은 소녀에게 내려앉아 비키지 않는다. 비가 그쳐 무지개가 떠도, 아침 이슬조차 햇살에 바싹 말라버릴 것 같은 날씨에도 여전히. 소녀의 곁은 늘 장마였다. 오늘은 비가 오려나. 소녀에게 곁을 준 이들은 때때로 중얼거린다.

 

 

 

:: 선관

 

 

 

 

:: 텍스트 관계

 한아름, 만우절 장난 한아름 안고

만우절이라는 거대한 변명 뒤 연출과에 대한 소망은 상대를 잘못 찾아 금방 무너지고 말았지만, 대신 얻은 건 추억과 인연이다. 아무리 혼자서의 관극이 즐거워도 때때로는 지루해지기 마련. 그러나 이제 더는 지루할 걱정이 없게 되었으니, 장난 한 번 망친 것치고는 제법 값비싼 선물이 아닌가? 물론 극장을 빠져나오는 길, 두 사람의 호기심이란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지라…… 분명 극장을 빠져나온 건 두 시인데 집에 도착하니 여덟 시였다 하는 순간도 있겠으나. 잔뜩 묻은 흙을 털어주고 나뭇잎을 떼어준 기억조차 이제는 추억이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의 수업 노트에는 서로의 필체가 남는다.

 

서은우, 우정은 단골 찻집 문 앞에서 만나

원인이라면 소녀 본인―의 무심할 정도로 상대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애정―이었다. 소녀는 자신의 성격이 제법 부담스럽게 다가간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과정에서, 자신을 내칠 생각이 없는 사람을 구분해내는 것 또한 서서히 눈에 익히기 시작하는데… 때마침 눈에 들어온, 자신을 내칠 생각이 없는 사람. 그게 바로 서은우였다. 좋아하는 노래를 공유하고, 재밌게 봤던 영화를 이야기해준다거나, 때로는 따끈따끈한 신작 영화를 은우의 메신저로 보내기까지 했으니 어쩌면 소녀는 그에게 퍽 귀찮은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

네가 왜 여기 있어? 그러니까, 부모님의 가게에서 차를 마시며 자신에게 태연히 인사해온 소녀를 보고 당황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소녀도 어쨌든, 언제부턴가 단골로 통하는 이 가게를 은우의 부모님이 운영한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으니,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을지도. 어젠 왜 안 왔어? 기다렸어? 시간이 지나면 두 사람 사이에는 가벼운 농담이 오간다. 주로 소녀의 일방적인 말이었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은 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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