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을?
  • 2023. 7. 5.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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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이키는 숨은 있지만 내쉬는 숨이 없다. 숨과 함께 갈라진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답지 않게 말을 흐리고. ……아니, 아니지. 이젠 무엇이 너다운 것인지 너답지 않은 것인지조차 잘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흐릿하다. 모든 게. 꼭, 안개처럼. 작게 숨을 뱉으며 손을 쥐었다 펴기만 했다.) 응. 그래서, 일부러 네게 말해주었어. 난 네 삶이 그렇게 흘러가길 바라지 않으니까. ……애초에 네가 내 말을 믿을 필요도 없지. 신경 쓸 필요는 더더욱 없어. 네 이름은 내가 준 게 아니야. 네 아버지께서 주신 이름이지. 사람들에게 널리 미덕을 전하라고. 네 입으로 말했잖아. (그러다 다시 네 이름을 부른다. 아상아, 하고. 그 이름에 이어질 내 대답은 없다. 아마 네 대답도 없겠지. 그저 불렀을 뿐이니까. 다만 어디까지나 추측이었다.) 

     

     ……칭찬 고마워. 하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속이는 분명 내게 필요해. (이윽고 우리가 가까워지는 소리. 네가 다가오는 소리. 하나, 둘, 셋. 그리고, 내가 다가가는 소리. ……하나. 이제 반 걸음만을 남긴 채다. 발끝 정도가 겨우 맞닿는 거리 소년이 네 말을 가로챈다.) 아상아. 내가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 들려줄 테니 부디 들어 봐. (이건 내 이야기야. 덧붙인다. 숨을 들이켜고, 잠시 멈춘다. 그러다 곧 터져 나왔다. 어쩐지 더 차분해진 목소리와 함께, 숨은.) 있잖아, 만약에. 네가 이름이 없는 상태라고 했을 때. 누군가 네게 이름을 주었어. 그런데, 그 이름이 실은 다른 존재의 이름이었다면. 이름을 붙여준 이가 아껴 마지않는 사람의 이름이라면. 넌 어떤 생각을 할 것 같아? (네게 하는 말은 아니지만 너라서 하는 말. 곧 소리가 멎는다. 물음이라고 던진 주제에, 어쩐지 답을 들을 용기가 채 나질 않지만. 그래서 무심코 작은 한숨을 쉰다.) 

     

     (이어진 네 목소리를 곱씹었다. 명백히 분노였고 체념이다. 다만, 그것만이 아니라. …….) …응. 그렇구나. 단 한 명. 아마 그곳에서 입김이 제일 센 사람. (아버지. 구태여 그 말을 입에 담진 않았다. 아니, 꺼내지 못했다. 네 말에 또 어떤 감정이 실려올지 몰라서. 그게 무엇이 됐든 약간은 벅찰 것만 같아서.) 뭐라 할 생각 없어. 그저 궁금할 뿐이야. 네가 왜 그런 결심을 했는지 말이야.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단 말이 있지 않니. 그리고, ……. (초아상 이전에 있는 넌 누가 돌보지? 다시 또 하지 못한 말. 퍽 가까워진 거리에 비가 내렸다. 손에 눈물일 것이 닿으면 소년은 손을 뻗는다. 그저 습관이었다. 비를 맞는 걸 좋아할 뿐인 누군가의. ……하지만, 이건 조금 유쾌하지 못하네.) ……비밀로 해주는 건 이번만이야. 그러니까, 울지 마. 앞으로는. 넌 초아상으로 여기 있잖아.

     

     (정적 끝에 이어진 것은 비웃음이다. 본인을 향한. 자조적이라고 하던가. 스스로에게서 웃음이 사라진 지 오래라는 것도 모르고 소년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어쩐지, 가라앉아있다.) 진짜와 가짜, 선인과 악인은 누가 나누지? 너 자신? 아니면 사람들? 그것도 아니면 내가 나눌까? 난 널 가짜나 악인이라는 말로 부르고 싶지 않아. 내가 만난 건 바깥에서의 초아상이 아냐. 협죽관에 온 초아상이지. 감히 누가 내 앞에 있는 널 보고 가짜라고 한다면 난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애초에, 함부로 부를 수 없어. 말의 힘은 대단해서, 그렇게 부르면 정말 그런 사람으로 보이게 되니까. (문득 말이 멈춘다. 언젠가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도 같은데. 그저 잠시 고민할 뿐이다. 소년은 이 말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 고민이라면 이미 진작했어야 할 텐데도! 결국, 네게 선수를 빼앗겼다. 아니, 넘겨주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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