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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도 할겸해서... 요즘 관심있게 읽고 있는 책을 '비 정기적' 으로 번역해서 올려볼까 합니다. 물론 발로 한 번역이니까 전문가적인 수준의 번역을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ㅎㅎ 사실 이게 책이 은근 두꺼운 편이라 끝낼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한번 해볼까 합니다.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만 된다면... 내년 말쯤엔 번역을 마칠수도... ^-^;;



위의 책 이구요, 원제는 Parachute Infantry: An American Paratrooper's Memoir of D-Day and the Fall of the Third Reich (Paperback) 입니다. 아마존의 http://www.amazon.com/Parachute-Infantry-American-Paratroopers-Memoir/dp/0385336497 이 링크를 따라 가시면 저렴하게 구입하실 수도 있습니다. 영어가 아주 어려운 편은 아니니까 그냥 심심하신 분들은 한권쯤 구입하셔서 읽어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한 번역임을 다시 한번 밝히며, 상업적 이용, 타 게시판으로의 링크, 허락없는 펌을 모두 금지합니다.

감수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스티븐 앰브로스 옹이 하셨구요,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빗 K. 웹스터'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등장하는 그 '웹스터'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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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캐년 웹스터의 2차 세계대전 회고담에 대한 각계의 평

공수 보병

 

저는 데이빗 캐년 웹스터씨를 만나볼 수 있는 영광을 누리질 못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가감 없이 그 분을 존경합니다. 데이빗씨는 수만명의 미군 보병 중 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병사였고 또한 훌륭한 작가 이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싸웠고, 에너지 가득한 열정이 담긴 글 솜씨로 후대의 우리가 전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신 분 입니다.”

-         스티븐 E. 앰브로스 (서문에서 발췌)

 

나는 2차 세계 대전 중 유럽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가한 공수보병들의 공적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이 책을 추천한 스티븐 E. 앰브로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         클레이 블레어, 워싱턴 포스트 북 월드

 

“[공수 보병]은 인간들의 전투중에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다.”

-         페이지 스미스

 

슬프면서 한편으로는 풍자로 가득찬 이 군인들의 이야기를 직접 전투를 경험하며 목격했던 웹스터씨는 최고급의 언어적 유희와 기술적인 작문실력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이 책은 1994 D-Day를 기념하는 책으로 뽑히기에 손색이 없다.”

-         북 리스트

 

 

 

 

 

겨우 15살이어서 D-Day를 잘 몰랐던, 나의 아내 바바라에게

그리고,

다시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유럽의 푸른 초원에서 세상을 떠난 나의 친구들에게

 

 
 

 

 

 

알림

 

이 책의 대부분은 전쟁 당시 웹스터씨가 직접 작성했던 친필 편지와 전쟁 직후에 기억을 되살려 집필했던 원고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운명과 만나다: 101 공수 사단의 역사 (뉴욕, 1948)을 집필하신, 레오나드 래포트씨나 아더 노스우드 주니어씨에게 사실과 다른점이 있는지 확인을 받았습니다. 미 육군은 이 책의 집필을 위한 지도, 사진, 역사적인 사실 확인에 상당히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버지니아에 사시는 팻 크리스텐슨씨와 밥 레이더씨 그리고 레오나드 래포트씨, 버 스미스씨, 한스 베젠하겐씨에게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서문

 

스티븐 E. 앰브로스

 

데이빗 캐년 웹스터씨는 단순한 하버드 영문학 전공의 학생이 아니었다. 그는 자발적으로 공수부대에 입대하여 유럽의 북서쪽에서 벌어진 전투에 직접 참가한 전투 보병이었던 것이다. 사실, 그는 꼭 군에 입대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대체로 부유한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란 사람이었고,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전쟁과는 상관없는 미국 본토에서 멋진 직업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전쟁에 직접 참여하여, 히틀러와 나치를 박살내는 것을 최전선에서 지켜 보고 싶어한 사람이었던 것 이다. 그는 중대 본부에서 보고서나 작성하고, 쉬는 시간엔 축구와 야구를 즐길 수 있는 행정병 보다 참호에서 직접 전투를 경험하고 싶어한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공수 보병 연대에 지원한 것은 그의 애국심을 뛰어 넘는 일 이었다. 웹스터씨는 작가가 되고 싶어했다. 1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에 강하게 매료 되어 있었던 것 이다. 그는 직접 그 경험을 하고 싶어했고, 그러한 것들을 묘사하고 싶어했다. 그는 글을 쓰는 것에 열정이 있었으며, 날카로운 지적 능력과 세심한 감정, 그리고 사물을 잘 관찰하고 묘사하는데에 재능이 있었다. 이러한 재능과, 공수 부대원으로서의 관점이 그로 하여금 이 대단한 전쟁 수기를 작성하게 하는 데에 한 몫을 단단히 해 냈던 것 이다. 사물에 대한 풍부한 묘사는 남자들의 전쟁을 우리가 엿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는 전선에서나, 부대 내 에서나 겁쟁이로 불리던 장교에 대해서도 강한 비판을 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본분을 지켜낸 부사관이나 병사들에겐 충심 넘치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중략)… 상어에 관심이 많았던 웹스터는 무려 29번이나 그의 글을 출판사에 보냈지만 출판사에서는 단 한번도 그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1961 9 9, 웹스터씨는 두꺼운 낚싯줄과 오징어 미끼를 준비하고 상어를 잡기 위해 산타모니카의 바닷가를 떠나갔다. 하지만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 진행된 수색작업에서, Tusitala (이야기 꾼 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라는 그의 보트가 해변에서 약 5마일 정도 떨어진 바다 위에서 발견 되었다. 보트에는 방향타와 노가 없었으며, 그의 시신은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웹스터의 아내인 바바라는 마침내 1963 W. W. Norton and Company 라는 회사에서 신화와 식인상어 라는 이름으로 남편의 책을 출판해냈다. 이 책은 영국에서도 출판되었고, 호주에서는 간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페이퍼백 으로 출판 되었다. 1975년에 영화 죠스가 개봉되었을 때, 델 에서는 이 책을 엄청나게 팔아치웠다.

 난 데이빗 캐년 웹스터씨를 만나볼 수 있는 영광을 누리질 못했다. 하지만 정말로 가감 없이 그 분을 존경한다. 웹스터씨는 수만명의 미군 보병 중 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병사였고 또한 훌륭한 작가 이기도 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싸웠고, 에너지 가득한 열정이 담긴 글 솜씨로 후대의 우리가 전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신 분 인 것이다.








서문

 

데이빗 캐년 웹스터

 

난 정말로 영국엘 가 보고 싶어했었다. 하얀색 객석과 빨간색 굴뚝이 달린 크고 검은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내가 읽었던 [아이반호], [납치], [로빈후드], [로나 둔], 그리고 [검은 화살]에 등장하는 영국 제도를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고 싶어했다.

 내가 읽었던 시는 전부 영국의 시 였으며,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 병정들도 전부 영국 병사였었다. (킬트를 입은 억센 스코틀랜드 병사는 착검한 채로 달리고 있었고 어떤 건 길고 운두가 높은 털모자를 쓰고 밝은 빨간색의 옷을 입은 의장대의 병사가 서 있는 것 이었다.) 어렸을때의 나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영국과 스코틀랜드 지방 출신의 습관을 이어 받은 부모님의 취향대로 옷을 입게 되었는데, 크리스토퍼 로빈제의 버튼 달린 신발과, 바깥쪽으로 단추가 달린 각반을 신었으며 빨간색과 하얀색이 뒤 섞인 체크 무늬의 줄이 양쪽으로 두개나 둘러쳐진 검은색 리본이 달려있는 작지만 화려한 털 모자를 썼었던 기억이 난다.

 마침내, 1943 9월의 어느 날 나는 영국으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작은 소년은 아니었다. 꼬마 병정이 드디어 삶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까만 색 털 모자 대신에 낙하산 병사용 턱 끈이 달린 철모를 쓰고, 물론 각반을 하긴 했었지만 강하용 전투화 위에 했으며 내 배낭에는 M-1 소총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캠프 샹스를 나와, 어두워진 허드슨 강에서 야밤에 선박으로 뉴욕 서쪽까지 이동했다. 용접공들은 근처에서 전복된 [노르망디 호]를 잘라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구경할 시간 같은건 없었다. 우리 모두는 다시 배에 올라타서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 커나드 부두에다가 우리를 내려놓았다.

 부두의 노역자들은 전부 사라지고 없었으며 택시 같은것도 없었다. 하얀색 쟈켓을 입은 짐꾼들도 전부 보이지 않았다. 유유자적한 여행객들과 그들의 친구나 가족들만 가끔 보일 뿐 이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 대대는 짐을 풀어 놓았다. 여섯명의 적십자 여성들이 커피와 도넛 그리고 작은 바느질 도구를 나눠주었으나 우리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 같은 건 허락되지 않았다. 우리는 재빨리 행군하여 최대한 멀리 이동하였다. 우리의 승선 번호와 잠자리를 확인하는 시간, 그리고 잠깐이나마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배를 탑승하기 직전에 이루어졌다. 땀에 절은 듯한 색깔의 [사마리아 호]를 타고 나니, 쇠 파이프 사이에 캔버스 천을 기워 만든 우리의 잠자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는 아침에 출발 했다. 선물 바구니나 색종이가 펼쳐지는 환송회 같은 건 없었다. ‘누가 해변으로 가는가같은 노래도 없었다. 왜냐하면 해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장도를 마중하는 사람은 오직 닻줄을 풀어준 몇 명의 부두 노동자들뿐 이었다. 그들은 우리 배를 풀어 놓고, 다른 배를 그 자리에 묶었다. 그리고 나서는 터그선 (배를 끌어주는 배) 이 우리가 탄 배를 밀어서 우리를 대양으로 안내했다. 우리가 탄 배는 천천히, 이별의 말도, 환송의 군악대도 보이지 않는 부두에서 우리를 밀어 파도가 밀어치는 강 하류로 우리를 밀어 보냈다.

 마침내 나는 영국으로 가게 됐다. 하지만 그건 내가 어릴 적 상상했던 모습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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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ay.